컨텐츠 바로가기

연설문

외교부를 떠나며(송민순 전 장관 이임사, 2.29)

작성일
2008-02-29 15:09:00
조회수
6768

외교부를 떠나며  


퇴임이란 일은 저에게 까마득한 일로만 여겨져 왔습니다. 더운 여름 그냥 땅만 쳐다보면서 산을 한참 오르다 문득 머리위로 시원한 바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면 어느덧 산등성에 도달해 버린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외교관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1971년 춘천에서 탄약창고병으로 군복무중일 때였습니다. 탄약고에서 포탄과 병기들을 헤아리면서 한반도 분단의 상황이 우리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 즉 국가통일을 이루는데 벽돌 한 장이라도 놓아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교부에 들어와  남북문제, 안보, 통일, 그리고 관련된 정치군사 문제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70년대 말 첫 해외 근무지가 당시 동서냉전과 독일분단의 상징이었던 서베를린 주재 총영사관이었습니다. 지금은 바닥에 흔적만 남겨놓은 그 유명한 베를린 장벽부근에 살았습니다. 동독주재 북한대사관 차량이 서베를린에 와서 우리 학생등 교민을 대상으로 소위 “공작” 이라는 것을 하고 새벽이면 동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리고 베를린과 하노버/함부르그를 연결하는 동독내 도로를 다니면서 체제를 달리하는 분단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도 목격하였습니다.

그후 과장,국장 시절에 한반도 정전관리, 그리고 한미동맹을  어떻게 서로가 필요로 하는 미래지향적 존재양식과 운용방식으로 발전시켜갈지의 문제, 한반도평화체제를 위한 제네바 4자회담을 포함하여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한반도 군비통제문제에 나름대로 열정을 쏟았습니다. 이들간의 복합적 함수관계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3년간 6자회담대표, 대통령 안보실장, 외교장관으로 일하면서 북한핵문제 해결과 이에 병행하는 한반도 평화체제수립을 위한 설계작업에 땀을 흘렸습니다. 아직 만족스럽진 않지만 어느 정도 진전을 보고 있는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북핵문제는 이 순간에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무엇 보다 국가로부터 이런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보람과 영광을 가질 수 있도록 그 동안 이끌어 주신 외교부 안팎의 많은 선배님들과, 지금까지 변함없이 곁에서 도와주신 동료 후배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늘 잊지 못할 것입니다.

외교부 장관으로서의 지난 15개월을 돌이켜 보면,

우리 외교부는 조직과 인력 확충을 중심으로 외교역량을 강화하고, 또 영사서비스망을 확대하는 일에서부터 북핵문제, FTA, PKO, ODA, 여수 엑스포등 국제행사 유치에 이르기 까지 많은 일을 이루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여기 계신 동료 여러분들과 해외공관장을 비롯한 직원 여러분들의 헌신적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북한과 관련된 외교문제를 위시한 여러가지 민감한 잇슈들로 정부내에서 아주 심각하게 토론한 적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개인이나 조직의 감정표출 보다는 국가전체의 종국적 이익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함께 인내하면서 어려운 고비를 넘겨왔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외관계에 있어 무게중심을 잡고 우리가 보여야 할 곳에서는 우리의 깃발을 들었고, 들려야 할 곳에서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었습니다.

제가 장관 재직중 가장 힘을 쏟은 일은 외교부 직원들의 기풍진작이었습니다. 모든 국장들이 담당분야의 장관과 같은 책임감과 권한을 갖고 일 할 것을 요구했고, 고맙게도 여러분들모두가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아프고 아쉬운 일도 있었습니다.

외교부는 오랜 기간 쌓여온 인사 적체와 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몇년전부터 유능한 후배들이 성장할 공간이 극히 제약된 상황을 맞이하였습니다. 어느 특정인이나 그룹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관행이란 우산아래 간신히 비만 피해왔던 것입니다. 불가피하게 수십년 양성된 외교 재목들이 조기 퇴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아픔에 잠 못이룬 날들도 많았습니다.

당초 추진했던 외교역량강화를 위한 다년도 계획이 정부임기와 연관되어 완성되지 못한 것도 내내 아쉬웠습니다. 다행이 새 정부에서도 외교역량강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만큼 후속작업이 이루어 질 것으로 믿습니다.

중동소사이어티(ME Arab Society)와 같은 광역외교지원 장치를 만드는 일도 기초만 닦아두고 완성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나머지 부분이 계획대로 진척되어 우리 외교의 지평이 크게 확장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북핵전체의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두 개의 과정에 아직 본격진입하지 못 한 것이나, 한.미 FTA가 국회에서 아직 비준되지 못한 것, 이 모두가 미완의 여백으로 남겨야 할 일 들이 되었습니다.

외교부 동료 여러분,

지난 60년간 우리는 압축성장을 하는 가운데 사회 각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내가 다 이루겠다는 당대주의에 젖어 왔습니다. 이제는 차곡차곡 빈 곳을 채우면서 성숙한 단계로 가야할 것입니다. 특히 외교는 당대주의로 될 일이 아니라고 봅니다. 앞에서 이루어 놓은 일을 다음 단계에서 개선 보완시키면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훌륭한 후임 장관님을 보좌하여 그 일들을 이루어 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덧붙여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저도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에게 딱딱하고 차가운 인상만 남기고 가는 것 같아서 입니다. 개별적으로 많은 시간을  갖지 못한 것이 못내 허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결점 많고 허술한 장관을 잘 이해하고 받쳐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행복한 장관이었습니다. 늘 감사할 것입니다. 아울러 고마움을 표시할 기회가 올 것으로 믿습니다.

떠나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굳이 몇가지 당부를 드린다면,

첫째, 우리 국가운명의 주인공이 되어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역사는 그 어떤 국가도 자기문제 해결의 주체가 되지 못하면 해결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는 냉혹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같은 중견국가도 우리 문제에 관한 한 강대국 중심의 세계질서흐름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는 지난 몇년간 우리가 실천해 온 것이며, 역내국가들과 국제사회에서도 이러한 우리의 역할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반도 분단을 극복하고 지역의 평화와 협력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관련국들과 전략적 비젼을 지속적으로 공유해야 합니다. 그러한 비젼공유 없이 북핵문제 해결과 평화체제수립을 논의하는 것은 설계와 기초공사 없이 벽돌을 쌓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러한 공동의 비젼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주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한반도가 왜 통일되어야 하며, 통일한국이 어느 국가에도 불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주변국과 공동의 비젼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역할은 외교부가 앞장서서 수행해야 한다는 역사적 책임의식을 우리 모두 가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 우리 삶의 영역확대는 외교부가 앞장서야 할 몫입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FTA, DDA, 기후, 환경등 국제경제질서 수립의 핵심주체로 자리 매김을 확실히 해 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PKO, ODA 분야는 우리가 자랑하는 조선이나 전자산업이상의 국가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잘 훈련되고 규율이 있는 우리 군의 국제평화유지 활동 참여와와 개발경험전수에 초점을 맞춘 우리의 개도국 지원은 국제사회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분야가 장기전략의 문화외교와 신뢰받는 국민보호와 함께 우리가 구축해야 할 건설형 외교의 영역입니다.

셋째, 외교 인프라를 지속 강화해 주십시오. 외교부에는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여있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참으로 취약합니다. 그것을 위해 몸을 던질 각오가 필요합니다. 특히 외교 예산을 질적.구조적으로 개선시켜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지난 수년간 크게 다양해진 외교부의 인적구성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오도록 운영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시간이 아니면 채울 수 없는 지혜의 공간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의 동료들 특히 막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지위, 보직, 승진, 편안함보다도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그 가치에 대해 소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소신은 그냥 고집이 아니라, 열정과 탐구, 그리고 책임감에 바탕을 둔 용기입니다. 물론 저도 늘 그렇게만 해 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할려고 했지만 하지 못했던 것도 많습니다.

동료, 후배 여러분,

저는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분단이라는 비정상적 상태를 정상으로 만드는 일에 나름대로 기여 하도록 어디에서든지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South Korean Ambassador가 아니라 그냥  Korean Ambassador로 소개되는 날이 빨리오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33년의 외교관 생활중 많은 스승들을 만났습니다. 어느 분은 흐트러짐 없는 공직자의 자세를 보여 주셨고, 어떤분은 우리를 통해 세계를 보는 한편 또한 세계를 통해 우리를 보는 균형잡힌 시각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셨고, 또 어느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굳은 의지를 갖고 흐르는 물같이 헤쳐나가는 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저는 그 분들의 어느 한 자락도 따라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내가 살던 때보다 더 아름다운 집을 남겨두고 가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떠나겠습니다.

우리 모두 존경하는 후임 유명환 장관께서 이 집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 수 있도록 여러분 들이 더 큰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