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연설문

장관,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외교” 이화여자대학교 초청 강연

작성일
2007-11-28 19:38:00
조회수
5098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외교”

이화여자대학교 초청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 강연


2007.11.27(화) 15:00-17:00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LG컨벤션홀



오늘 대학생 여러분들과의 대화는 장관으로서 처음 갖는 기회인데, 저로서는 젊은이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각자 갈 길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여러분들은 갖고 있는 꿈이 굳어진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형성 중인 만큼,다양하게 살아온 인생의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시험공부 못지 않게 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여자대학에 정식으로 들어와 본 것이 처음입니다만, 이화여대와 같은 훌륭한 대학에서 글로벌 인재를 배출하는 것은 국가 발전을 위해 필요하며, 특히 국제무대에 많은 여성들이 진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교부에도 최근 많은 이대 출신이 입부하여 현재  39명에 이르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오늘 함께 참석한 여러분의 외교관 선배들에게 들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언론에 ‘외교’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경제의 70%를 대외에 의존하고 있고, 인구 1인당 외국군대가 가장 많아 원하든 원치 않든 안보의 대외의존도 높은 나라입니다. 또한 우리 국민이 전세계에 퍼져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외교의 중요성이 어느 나라보다 크다고 하겠습니다. 아울러 오늘날에는 국가의 모든 영역이 광의의 ‘외교’의 영역을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FTA, 6자회담, 여수박람회, 소말리아 선원 피랍, 아프간 사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등이 모두 외교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이며, 외교는 결국 우리의 안전과 경제,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상 등의 문제를 모두 망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경제, 안보, 통상, 문화, 외교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외교는 이를 다 아우르는 개념이지 병렬되어 있는 개념이 아니라고 봅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외교는 3P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외교는 평화(peace)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둘째, 외교는 국가의 번영(prosperity)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부르고 등 따뜻하다”라고 말하는데 “배부르다”는 것이 prosperity이고 “등 따뜻하다”는 것이 평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 외교는 국가의 명성과 자존심, 그리고 세계 속에서의 국가위상(prestige)을 높이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가 서세동점 시대에 나라가 어떻게 나가야 할지 전망을 못하고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나라를 잃었고, 그 뒤로 식민지, 전쟁, 분단, 군사독재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아 왔는데, 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아직도 우리의 환경이 결코 정상적인 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나라의 운명을 내다보고 자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한 역사의 왜곡이나 굴곡을 지금까지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외교는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보면, 유럽에서 외교를 가장 잘 하는 세 나라를 꼽으면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입니다. 이들 세 나라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강대국 속에 끼어 있다는 것입니다. 네덜란드는 영국, 독일, 프랑스,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 스위스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이들 국가들은 슬기롭게 peace와 prosperity를 추구하고, 이것을 넘어 국제사회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국가의 prestige를 높이고 있는데 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외교 과제를 살펴보면, 가장 시급한 문제가 북한 핵문제입니다. “안보는 산소”라는 말이 있는데, 평소에는 산소가 있는지 없는지 느끼지 못하지만 방에 산소가 없으면 숨이 가빠지고, 가쁘다고 생각되면 이미 위험수위로 넘어간 겁니다. 북핵문제는 영변에 있는 몇 개 시설의 문제가 아니라, 그 근저에는 한반도 분단 상황에서 야기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핵을 해결하면서 한반도 분단을 극복하는 길로 가고자 하는 것이며, 2005년 9.19 공동성명에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관련 내용을 집어 넣은 것도 그러한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나 미국은 북한이 확실히 핵만 포기하면 북한에 대한 수교라든지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만들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 “지금이 기회다, 밝은 미래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지금 잡아라”라는 메시지를 많이 주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한반도에서 분단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적인 상황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 정부는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이것은 경제학적인 생각의 전환입니다. 문을 닫아 놓고 그 안에서 잘 살 것인가, 아니면 열어 놓고 큰 사업을 해 볼 것인가 하는 결정의 고비가 FTA라는 것인데, 정부는 후자를 택한 것입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다른 나라들과 꾸준히 FTA 체결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FTA라는 것이 자꾸 모여가면 결국 WTO체제로 수렴되어 갈 것으로 보며, 이를 통해 우리의 성장기반을 확충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세계의 여러 어려운 나라에 대한 개발원조(ODA)와 평화유지활동(Peace Keeping Operation)을 통해 더불어 잘 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위험을 감수할 용기가 없고 이웃을 위해 돈을 쓸 수 있는 관용이 없으면 존중받지 못합니다. 동네에 나쁜 사람이 들어 왔을 때 힘을 합해 쫓아내고 마을의 어려운 이웃을 돕고 먹을 것을 나눌 때에 존경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외교의 주요 과제에 관해 말씀드렸습니다만, 한국의 외교가 안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의자에 잘 앉으면 여러분의 자세가 바르게 될 수 있지만, 제가 한국의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가 앉아있는 의자가 비뚤어진 의자라는 것입니다. 비뚤어진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자기의 허리가 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한국 외교의 과제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정부는 핵을 포기시키면서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수립하여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으로 만들어 나가는 노력을 하고 있고, 이것이 지금 중요한 고비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핵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방에 한 사람이 수류탄을 들고 같이 잘 살 자고 하면 절대 안심하고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저는 역사가 움직이는 것이 독일의 통일처럼 아주 혁명적 상황으로 갈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오래 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적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의 커다란 용기가 결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국가의 통일이 필요하냐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하는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남쪽만 잘 살 수는 없습니다. 1세기 전 식민지 시대 경제학에 ‘beggar your neighbor policy’라는 이론이 있었지만, 지금은 옆 사람을 잘 살게 해야 내가 잘 살 수 있다는 ‘enrich your neighbor policy’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반도에서도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적인 상황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지금 남북이 중심이 되고 휴전협정에 서명한 미국과 중국이 참여하는 4자 평화체제 회담을 개최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상황을 분리해서는 안 됩니다. 유럽에는 NATO 같은 기구가 있고, 동남아에는 ASEAN이라는 대화와 협력기구가 있으며, 그 외의 지역에도 대화와 협력기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북아에는 그러한 기구가 없습니다. 동북아에 안보와 협력을 위한 대화의 기구를 만들자는데 한국이 앞장서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6월 제주도에서 한·중·일 외교장관이 만나고, 이번에 싱가포르에서 한·중·일 정상이 모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6자가 모여서 핵문제에 진전이 나오면 동북아 전체의 안보를 논의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안보란 단순히 누가 창 몇 개를 가지고 있고 총 몇 개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가 서로가 뭘 하는지, 뭘 만드는지 투명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통일비용을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들었는데 분단비용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단되어 있지 않았다면 우리의 능력을 더욱 크게 발휘하고 국제사회에서 훨씬 존경받을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60여만 군대를 유지하고, 일년에 250억 달러 이상의 군비를 쓰고 있는데, 외교부가 해외 공관을 운영하고 아프리카 원조하고, 유엔에 분담금 내고, 국제기구 JPO 보내고 하는 것을 전부 다 합쳐도 국방부가 1년에 전투기 10대 사는 값이 안됩니다. “가장 비싼 외교가 가장 싼 전쟁보다 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통일된 한반도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통일된 국가와 민족의 역량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큰 나라들 사이에서 큰 발언권을 갖고 지평을 넓히고 더 당당하게 사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이 그려준 지도를 따라온 것입니다. 근세에 서세동점 이후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을 맺었고, 해방도 우리 스스로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분단이 되었고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도, 유엔 16개국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역사를 우리가 쓴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고 능력을 키워나가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여러분께 가장 하고 싶은 말은 자기 역사를 스스로 쓸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다음 세대에게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나라를 물려주는 국가적 기풍(national ethos)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는 한미관계도 많이 바꾸어 왔습니다. 휴전선에 있는 미군부대를 평택으로 옮기고 용산에 있는 기지도 이전하고, 미군이 갖고 있던 전시작전통제권을 2012년에 돌려받기로 했습니다. 작전통제권은 한국이 이 정도 나라라면 스스로를 방위하고 남는다는 판단을 미국이 하고 있고, 앞으로 한미동맹은 동북아 전체 안보를 위해 유용한 협력체제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양국이 협의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한미 양국은 서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동맹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국가와 국가간 귀착점은 어디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이익의 균형점(balance of interest)입니다. 많은 협상에서 내가 51을 갖고 상대가 49를 갖는 정도의 차이가 나는 것이지 내가 60을 갖고 상대가 40을 갖는 협상은 지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 외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특히 중국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데 협력이 꼭 필요한 나라입니다. 현재 무역고가 가장 많고, 일주일에 800여 편의 항공기가 운항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비정상적 상태를 정상으로 만드는데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나라입니다.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은 일본도 우리도 이사를 못가고, 더불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고칠 수 없는 것은 참고 살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존중 받으려면 더불어 살 수 있어야 하며, 이를 잘 관리하는 외교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국가 위신을 높이는 두가지 방법은 개발원조와 평화유지활동이라고 봅니다. 해외를 다녀보면 상대국에서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척 궁금해 합니다. 60, 70년대에는 자기들이 우리보다 소득이 훨씬 높았는데 지금은 우리와 비교가 안 되는 상황이니 도와달라는 겁니다. 또 돈으로 도와달라는 것보다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합니다. 이러한 개발 경험은 미국, 영국, 일본이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두 번째 길은 희생을 감수할 용기를 갖고 평화가 위협받는 곳에서 평화를 지키는 것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냉전적 요인도 있었습니다만, 수많은 외국 군인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려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피와 살(blood and flesh)을 희생할 용기를 갖지 않고서는 국제사회에서 존경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이 국가 이미지입니다. 지금 외국인에게 물어보면 ‘한국’하면 떠오르는 것이 한국전쟁, 일본에서 트랜지스터 기술을 배워 호주머니에 돈 좀 넣고 다니는 사람들, 군사독재 등과 같은 이미지들인데, 이것을 변화시키는데 필요한 것이 문화외교입니다. 한국이 원래 전통과 문화가 있고, 예술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구나 하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미래에 대한 다양한 꿈들이 있겠지만 외교관의 길을 가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나와 국가이익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 수 없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외교관입니다.
나라가 어려울 때 외교관은 어려운 직업이기도 합니다. 60, 70년대에 한국이 그러했습니다. 예를 들어, SOFA 협정도 1967년까지 미국에 대한 아무런 법도 없었던 것이 우리 외교관 선배들이 매달리고 매달려서 67년에 최초로 SOFA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들이 SOFA를 만들고 그날 저녁 통음하면서 울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90-91년경 제가 담당과장이 되어 1차 협상을 해서 반쯤 바꿨습니다. 10년쯤 후에 우연히 제가 북미국장을 하면서 재협상해서, 지금은 한·미간의 SOFA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균형있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그만큼 성숙했다는 것이며, 이것이 외교관으로서의 보람이기도 합니다.

학생 여러분, 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누가 여러분의 서가를 쳐다보았을 때 무엇을 전공하는지를 알 수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전공하는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분야의 책이 꽂힌 서가 속에서 열심히 공부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인생의 선배로서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