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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故홍순영 장관 추도사(5.2)

작성일
2014-05-02 10:00:00
조회수
4367


故 홍순영 장관 추도사



유가족 여러분, 선배 장관님과 선․후배 동료 여러분,

오늘 저희들은 저희 모두가 사표로 삼고 있는 故 홍순영 장관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 배웅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깊은 슬픔에 잠긴 이 때, 우리 외교의 큰 버팀목이자 기둥이 되어 주셨던 홍순영 장관님의 갑작스러운 타계 소식을 듣게 되어 더욱 비통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외교 일선에서 또한 공직을 떠나신 후에도 늘 정의와 원칙을 강조하시던 장관님의 원기찬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한데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나시니 참으로 안타깝고 허망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는 장관님을 보내드리는 슬픔의 자리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장관님께서 남기신 족적을 되돌아보고 가르침을 되새기며 각오를 새로이 하는 다짐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외교부 전 직원들의 존경과 사랑을 담아, 장관님 영전에 깊이 머리 숙여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 여러분, 외교부 선․후배 동료 여러분,

장관님께서 재임 시절 어느 날 저에게 큰 임무를 주시면서 ‘자네가 장관이라고 생각하고 소신껏 하라’고 신뢰를 보여주셨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또한 최고의 외교관이 될 것이라고 격려해 주신 덕분으로 오늘 이 중요한 시기에 역사의 한 부분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故 홍순영 장관님은 ‘정직과 원칙’을 소신으로 삼아 평생을 굳힘 없이 실천하신 진정한 외교관이셨습니다. 정직에서 우러나오는 용기와 정정당당함. 이는 치열했던 고인의 외교관생활을 관통했던 덕목이자 행동 철학이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나 원칙과 소신을 지키셨고, 협상의 현장에서는 누구도 내기 어려운 용기를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하며 국익을 지키는 데 진력하시던 모습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한미통상마찰이 극심했던 1980년대 말 미국의 고압적인 협상행태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데 주저함이 없으셨고, 이를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인 국내 언론은 당시 차관보였던 고인의 연설문을 거의 전재하다시피 보도하는 드문 기록을 남기기도 하셨습니다. 통일부장관 시절 북한과의 고위급회담에 나가셔서 원칙에 맞지 않는 말과 과도한 요구를 하는 북한측을 준엄하게 꾸짖고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신 용기는 고인께서 실천하신 삶의 자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인의 이러한 가치관과 철학은 우리 외교사에도 큰 족적이 되어 빛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국장 재임 시에는 우리 외교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아프리카 순방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내시며 對아프리카 외교의 지평을 여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외무부 제2차관보 재직 시에는 북방외교추진단장으로서 우리의 對공산권 수교에 첨병 역할을 하셨으며, 마치 도미노가 하나하나 넘어지듯이 수십년간 잠겨있던 동구권 국가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시어 우리 외교사의 새로운 장을 쓰셨습니다.

냉전체제가 붕괴되기 시작하던 1980년대부터 러시아, 중국과의 수교 등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를 뒤바꾸어 놓은 1990년대,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의 시기에 고인께서는 駐파키스탄대사, 駐말레이시아대사, 駐러시아대사, 駐독일대사, 駐중국대사, 외교통상부 장관, 통일부 장관 등을 역임하시며 이 나라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故 홍순영 장관님은 인간의 가치를 최고로 하는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몸소 실천하신 이 시대의 진정한 스승이셨습니다. 무엇보다 소외되거나 빛나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에 대해 따뜻한 배려를 아끼지 않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가슴 깊이 남아있습니다. 대사 재직 시절, 파우치를 담당하는 직원이 공항에서 업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계시다가 격려하시던 모습은 아직도 유명한 일화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故 홍순영 장관님은 외교부 직원들에게 겉으로는 엄격하시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인자하신 아버지와 같았습니다. 직원들의 잘못을 근엄하게 꾸짖으시면서도, “화를 내어도 해가 지도록 품지 말라”라는 성경 말씀을 떠올리시며 퇴청 전 직원들에게 친히 전화를 걸어 다독거리셨던 인자한 분이셨습니다. 이는 고인을 가까이서 모시고 일한 수많은 직원들이 남다른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외교 현장을 떠나서도 외교협회장으로 재직하시는 등 한국 외교 및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아낌없는 격려와 조언을 해 주셨으며, 후학 양성에도 헌신하셨습니다. 이러한 고인의 열정과 헌신, 그리고 탁월한 기여는 오늘날 대한민국 외교와 외교부 발전의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외교부 선․후배 동료 여러분,

故 홍순영 장관님께서 외교 현장 안팎에서 늘 강조하시고 실천하셨던 정직, 용기, 인본주의는 우리 외교인들이 지향해야 할 외교관像일 뿐만 아니라, 세월호 침몰로 슬픔에 잠겨 있는 우리 국민들이 바라는 우리 사회의 참된 지도자像에도 부합하는 것입니다.

오늘 고인의 삶을 회고하며, 또 다른 격동의 한 가운데 처해 있는 한국 외교를 열어갈 지혜를 구하게 됩니다. 최근의 주변국 관계 등에서 보듯이, 우리는‘지속가능한 신뢰’가 진정한 상생의 버팀목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격랑 속 외교 현장에서 고인이 강조하신 덕목들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지구촌 행복을 지향하는 우리 외교인이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故 홍순영 장관님,

장관님께서 못다 이루신, 당당한 외교의 꿈과 한반도 평화통일의 대업은 저희 후배들이 반드시 이루어놓겠습니다. 나라를 위한 모든 시름, 걱정 다 내려놓으시고 천국에서 편히 잠드시길 기원합니다.

끝으로 평생을 장관님과 함께 하시며 힘이 되어 주신 사모님과 유가족 여러분들께 심심한 애도의 말씀을 올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