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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제1회 윤후정 통일 포럼 외교장관 축사(6.25)

작성일
2014-06-25 16:40:59
조회수
5748

 
'제1회 윤후정 통일 포럼' 외교장관 축사


윤후정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총장님, 김선욱 총장님,
이홍구 총리님, 정세현 장관님, 송민순 장관님,
장달중 교수님, 조 형 교수님, 최대석 교수님, 조동호 원장님김영희 대기자님,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은 6.25 전쟁이 발발한 지 꼭 6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금년은 또한 한반도 분단 70년을 앞둔 해이기도 합니다. 2차 대전 종전시 같이 분단되었던 독일이 25년전 베를린 장벽의 붕괴 후 통일을 이루고 이제 통합까지 완성하였는데, 전쟁도 아니고 평화도 아닌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보면서, 정부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 더욱 큰 역사의 무게를 느끼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연초부터 통일 논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으시고 외교부를 포함한 외교안보부서 연두업무 보고시에도 평화통일에 관한 집중적인 논의를 가진 데 이어, 지난 3월 독일 방문시에는 대통령께서 드레스덴 연설을 통해 직접 3개항 대북제안을 하신 것도 분단극복을 위한 우리 정부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조만간 통일 준비위가 출범하게 되면 정부 차원을 넘어 범국민적 차원에서 보다 많은 지혜를 모으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마침 오늘 이화여대 통일학 연구원 주최로 제1차 윤후정 포럼이 출범하고, 그 첫번째 주제를‘한반도 분단 극복과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으로 정하신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의미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오늘 출범하는 이 포럼은 우리 민족의 근본 문제인 분단을 극복하고 북한 지역과 주민에게 자유와 평등, 정의와 복지 등 대한민국 헌법 이념의 실현을 모색하며 동북아의 평화질서 구축을 위한 지혜를 모으려는 목적으로 시도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가 국민행복시대의 연장선상에서 한반도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한반도 행복시대를 만들기 위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하고, 이와 함께 동북아의 대립구조를 신뢰와 화해의 구조로 전환시키려는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을 병행하여 추진하고 있는데 정부의 이러한 국정방향과 금번 포럼이 지향하는 비전이 잘 조화된다고 봅니다.

다시 한 번, 윤후정 통일포럼의 출범을 축하드리며,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고 계신 여러분들의 경륜과 통찰이 모아져, 윤후정 포럼이 한반도와 동북아의 난제를 해결하는 공론의 장으로서 크게 발전해 나가기를 기원 드립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저는 지난 5월 유엔 안보리 의장직 수행을 위해 뉴욕 방문시 국제평화연구소 연설에서, 1991년 두 개의 별개 회원국으로 유엔에 가입한 남북한이 언젠가 독일처럼 하나의 회원국 이름으로 명패를 바꿀 날이 올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정부의 평화통일 외교정책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41년 전 바로 금주 당시 한국정부는 새로운 국제정세에 맞추어 6.23평화통일 외교정책선언을 통해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북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하는데 반대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였고, 18년 후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이 이루어진바 있습니다. 1973년 6.23선언을 분단고착화 정책이라고 비난했던 북한은 국제사회의 여론에 밀려 반대를 접고 91년 9월 유엔에 들어왔습니다. 곧이어 92년 2월 발효된 남북한 기본합의서는 이러한 새로운 상황을 반영하여 남북한간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이것은 통독전 서독이 동서독 관계를 독일 내 타국관계라고 설명한 것과 유사합니다.

독일이 처했던 상황과 우리가 처한 상황이 유사한 부분도 있고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만, 통일추진에 있어 공통된 것이라면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대내적 측면, 동서독 내지 남북한 관계적 측면, 그리고 국제적 측면의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시너지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점은 연초 외교안보부서 연두 업무보고시 대통령께서 강조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통일대박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제안,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미국과 중국 등 한반도 이해관계국들과의 관계 강화 및 중견국 외교 등은 모두 이러한 노력의 일환인데 이중에서도 국제적 측면, 즉 통일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바로 저희 외교부의 몫이라고 하겠습니다.

70년대 초와 90년대 초에 국제질서의 변화가 한반도와 주변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고, 잠시나마 남북한 간에 화해협력의 분위기를 가져다준바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많은 국내외 분석가들은 북한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서, 아니면 국제환경이 자신들에게 불리할 때 변화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이러한 분석이 타당하다면 20여 년만에 다시 한 번 동북아와 세계질서가 요동 치고 있는 현금의 상황은 향후 한반도 정세와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문제의식과 역사사명감을 갖고 지혜를 발휘해 나갈지에 대한 중요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주지하시다시피,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는 냉전종식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복합적이고 유동적인 상황으로서 중층적이고 동시다발적인 도전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지정학의 귀환이라고 하고 저는 아시아 패러독스 또는 역사의 귀환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경제적 측면이 아닌 외교안보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그간 동북아의 긴장이 주로 북한발, 특히 북핵문제와 관련된 것이 많았다면,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동북아 내지 동아시아의 수많은 actor들이 서로에 대해 불신 및 경계심을 갖고 대립하는 양상으로서 마치 판도라의 박스 뚜껑이 열린 것처럼 동해에서, 동중국해에서, 그리고 남중국해까지, 태평양의 파고가 더 이상 태평스럽지 않습니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헌법에까지 명기된 핵보유국 지위 추구, 일본 현 지도층의 집요한 전후질서 변경 노력과 악화되고 있는 역사수정주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부상, 강한 러시아를 지향하며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아태 중시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러시아, 그리고,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정책 등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전환기에 놓인 한반도와 동북아를 마주 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각 변동에 견 줄 만큼 요동치는 역내정세 속에서 지속가능한 평화와 협력 구도를 정착시키려는 열망도 그 만큼 커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전 부터 이러한 상황인식과 역사의식을 갖고‘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아시아’시대를 열어 나가는 것을 외교정책의 핵심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 반 동안 이를 위해 신정부가 어떻게 해왔는지를 어제 별도의 특별 강연을 포함해서 그간 많이 말씀드렸고 다른 기회가 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축사를 하는 이 자리에서는 구체적인 정책 내용보다는 전환기의 한국외교를 정부가 추진해 나가는데 있어 몇 가지 고려사항을 말씀드리는 것으로 가름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역사적 전환기에 처한 우리의 자세입니다. 일각에서는 우리가 19세기말 열강들의 각축전 당시처럼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신세, - 샌드위치론, 내지 패배주의적 숙명론이라고 하겠습니다.- 에 처한 것처럼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가끔 접하는 줄타기라든가, 조공외교라든가, 뒤통수를 맞았다든가하는 피상적 시각들이 이에 속합니다. 그간 우리의 국력이 또한 외교력이 얼마나 신장되었는지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평가받고 있는지를 무시내지 간과하고, 우리 스스로 사고의 지평을 넓히지 못한 채 패배주의적 담론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윤후정 총장님의 살아오신 여정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고 있지만 외교당국자로서 고맙게 생각 드리는 것은 총장님의 ‘부진즉퇴(不進則退)’의 철학입니다. 즉, 우리가 처한 상황을 숙명으로 한계 짓지 않고, 그‘한계를 넘어 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할 수 밖에 없다’는 자세야 말로, 난마처럼 얽힌 한반도와 동북아 문제의 진전을 과제로 삼고 있는 우리 외교안보분야 종사자들의 훌륭한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외교부로서는 ‘분단의 벽과 동북아 정세의 한계를 넘지 못하면 퇴보하고 만다는 분명한 인식하에 보다 능동적이고 전략적인 외교를 추진하고 있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내치의 실패는 다음 번 선거의 패배로 국한되겠지만 외교의 실패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는 케네디 대통령의 말도 있습니다만,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포함하여 지난 1년 반 동안 공개 내지 비공개된 수많은 역내국가들과의 갈등해소과정에서 우리의 국익을 확보하고 위기관리능력을 나름대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미동맹을 최상으로 강화하고 한중관계를 과거 어느 때보다 돈독히 하면서 우리의 외교지평을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요 외교통일 정책에 대한 주변국 등 국제사회의 이해와 지지가 이를 반증하고 있습니다. 우리 외교는 동북아 정세의 전환기적 도전을 기회로 만들어 나가고자 합니다.

둘째, 외교안보 문제를 국가적 차원보다는 당파적 내지 이념적 차원에서 보려는 편협한 시각의 극복문제입니다. 지난 10여 년 이상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을 수립 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얼마나 많은 논란이 있었는지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전부터 과거 정부들이 취했던 정책들과 그 시행 과정에서 도출된 교훈을 토대로 보다 균형되고 통합적인 시각을 갖고 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은 모두 그러한 고뇌의 산물입니다. 남북 관계와 국제공조, 억지와 압박 대 대화와 변화유도간의 균형, 동맹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조화, 원칙과 유연성을 조화시키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 있어서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어려움에 봉착하거나 진전이 더딘 경우도 있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지지도 받고 국제사회의 지지도 받으면서 우리의 국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외교안보정책은 일희일비하지 말고 좀 더 크고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단기적 전술과 중장기적 전략 및 비전 더 나아가 국가 대전략을 구분해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 지식인 사회에서도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너무 의식하게 되면 방향성을 상실하게 되고 너무 장기간만 바라보면 당장 발등의 불이 번지고 있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방향성을 갖고 일관된 전략과 정책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남북한 관계든 외교관계든 상대방의 의도와 능력, 향후 예상되는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서 대처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전술 전략에 말려들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정책당국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데에서 움직이는 상대방의 동향에 더욱 신경을 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상대방의 강경 태도가 초조함이나 취약함에서 나오는 것인지 실제 비장의 무기를 갖고 그런 것인지, 상대방의 미소나 유연함이 대화의 신호인지 새로운 대립을 위한 신호탄인지 잘 구분해야 합니다.

이것은 북한 핵문제나 남북대화, 한․일간 역사문제와 이에 대한 일본의 태도, 일․북 접근을 보는 시각, 역내 다양한 갈등관계 속에서의 우리의 입지, 그리고 우리의 궁극적 통일에 대한 이해관계국들의 태도를 분석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코끼리 다리 하나를 만져보고 코끼리 전체 모습을 얘기하거나, 편의 동거하는 남녀를 보고 뜨거운 사랑에 빠진 것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하면 안 됩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참된 발견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라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푸르스트(Marcel Proust)의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 평화 질서에 대한 논의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포럼이 현상에 대한 분석을 넘어 깊은 통찰력을 토대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새로운 시각이 마련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바로 이러한 새로운 시각이 윤후정 명예총장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퇴보하지 않고 한계를 넘기 위해’오늘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로운 자세라고 확신합니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