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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동북아원자력안전협력회의 (제3차 TRM+) 개회사

작성일
2015-10-22 10:31:53
조회수
7145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님,
Liu Hua(리우후아) 중국 TRM 수석대표님,
Fujita Kenichi(후지타 겐이치) 일본 TRM 부수석대표님,
세계 각국에서 오신 정부 및 국제기구 관계자, 전문가 여러분,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반갑습니다. 윤병세 외교부장관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원자력의 발견을 인류역사상 불의 발견 이래 가장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야누스의 얼굴을 한 원자력의 가공할 파괴력에 대한 공포를 먼저 경험해야 했습니다. 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즉 상호확증파괴라는 섬뜩한 표현이 대변하듯이 냉전시대 핵공포가 지배하던 상황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한 것은 결국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기가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한 커다란 혜택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비전을 갖고 1953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을 제안했습니다. 동 연설을 통해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이용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창설을 제안한 이래 원자력은 현대사회에 빼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원자력 발전의 가능성은 안전에 대한 신뢰를 확보할 때만 가능합니다. 1979년 미국의 Three Mile Island 사고,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 2011년의 후쿠시마 다이이치 사고가 일어나게 된 직접적 원인은 서로 다르지만, 세 차례의 원전사고는 인간의 노력으로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거나 그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원자력을 더욱 안전한 에너지원으로 만들 수 있음을 의미하며, 방사능 확산의 초국경성은 무엇보다도 국제적 차원에서, 그리고 인접국들간 지역 협력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단어인 ‘안전문화(safety culture)’라는 용어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국제원자력안전자문단(INSAG)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안전문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에 대전환을 가져온 체르노빌 원전사고 25주년을 맞은 2011년에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것을 보면 원자력 안전 문제는 결코 ‘과거사(thing of the past)’가 아닌 현재와 미래의 문제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2주전 발표된 금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그의 대표작《체르노빌의 목소리》의 서문에“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라는 독백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원자력 안전 문제가 현재는 물론 우리의 미래세대에 있어서도 중요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무엇보다도 내년부터 출범할 신기후체제에서 원자력은 저탄소 에너지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해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세계에너지전망’에 따르면 전세계 원전은 2040년에 이르면 2013년 대비 60%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반면, 원자력 안전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시민들의 인식이 증대되고 있어 원자력 안전에 대한 담보 없이는 미래 에너지원으로서의 원자력 발전소 건립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원자력 안전 문제는 에너지 안보 및 기후변화 문제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심각한 안보 문제로 대두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작년 한수원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원전과 같은 국가 주요 기간시설이 사이버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제고시켰습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원자력 안전에 관한 국제적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재점검하기 위해 2011년 유엔총회 계기에‘원자력 안전 및 핵안보 고위급회의’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회의에서 반 총장은 원자력 안전 강화를 위한 IAEA의 역할과 함께 원전 안전에 대한 각국 정부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 그리고 원전 안전을 위한 지역 차원의 협력 메커니즘 구축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지역협력 차원에서 볼 때, 동북아 지역은 원자력 안전을 위한 역내 협력 메커니즘의 필요성이 그 어느 곳보다 큽니다. 얼마전 세계원자력협회 자료에 따르면 금년 8월 현재 한중일 3국은 총 93기의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총 92기의 원자력발전소가 현재 건설 중이거나 건설될 예정입니다. 이런 추세라면 10여년 후 한중일 3국이 보유하는 원전수는 2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며, 2030년 경에는 전세계 원전의 1/3이 동북아 지역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처럼 높은 원전 집중도에 더해 동북아 지역은 인구밀집도가 아주 높고 지진 및 쓰나미 등 자연재해에도 상대적으로 취약하여 원자력 안전의 중요성이 세계 어느 곳보다 큰 곳입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사실 한반도야 말로 원자력의 두 얼굴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지역입니다. 작년말 로이터통신이 올해의 사진으로 선정한 한반도의 밤을 촬영한 위성사진을 보면,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개발하여 세계 5대 원전강국으로 발돋움한 한국은 밝고 찬란한 불빛으로 가득하지만, 영변의 핵시설에서 핵무기 개발에 매달려온 북한은 칠흙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습니다. 원자력 안전 측면에서 이러한 북한의 핵시설은 동북아 지역 공통의 우려이기도 합니다.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은 원자력 안전 분야가 동북아 역내 협력과 신뢰 증진을 위한 좋은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문제 의식하에 동북아 평화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원자력 안전을 주요 아젠다로 추진해 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작년 8.15 경축사에서「동북아원자력안전협의체」구상을 발표하셨습니다.

석탄철강분야의 협력을 통해 다자협력을 이루고 유럽원자력공동체(EURATOM)라는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체까지 만들어낸 EU의 경험은 동북아 지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EURATOM은 민감한 원자력 분야에서 신뢰구축을 통해 협력의 인프라를 마련하고, 오늘날 국제기준 설정자(standard- setter)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한일중 3국은 2008년 이래 원자력 안전에 관한 고위급 회의인 TRM 회의를 통해 관련 협력을 진전시켜 왔습니다. 2013년부터는 더 많은 역내 국가들과 국제기구들이 참여하는 TRM+ 회의를 신설하여 논의의 폭을 넓혀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회의가 동북아 원자력 안전 협력 제고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역내 국가들 및 국제 원자력계와 공유하면서「동북아 원자력안전협의체」구축을 위한 관계국가들 간 논의가 본격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원자력 안전 규제 중심의 기존 협력을 확대하여 원자력 사고대응 협력, 원자력 안전 R&D 협력, 원전 운영사간 협력 등 원자력 안전 전반에 걸친 포괄적 협력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한일중 3국의 공동 노력을 통해「동북아원자력안전협의체」가 발족한다면 동북아 평화와 협력에 있어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북한도 장차 핵무기를 포기하고 원자력 안전을 위한 협력 과정에 동참하여 한반도 전체가 찬란하게 빛나는 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함께 하신 여러분들께서 이러한 여정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주시길 바라며, 동북아 원자력 안전 협력을 위한 유익한 회의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