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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문

세종연구소 개소 30주년 기념 학술회의 축사

작성일
2016-05-20 00:00:00
조회수
9691

홍용표 장관님,
박준우 이사장님,
진창수 소장님,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세종연구소 개소 30주년 기념 학술회의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제가 2013년 외교장관에 취임한 이래 오늘과 같은 행사에서 축사 또는 연설을 행한 적이 많습니다만, 오늘 이 자리는 어느 때 보다 각별한 소회를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세종연구소가 창설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20세기 후반기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어려웠던 사태들과 관련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달여 간격을 두고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과 아웅산 테러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가 처한 특수한 안보상황 속에서 외교안보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정책연구기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커졌습니다.

이런 배경하에서 출범한 세종연구소는 격동하는 국내외 정세속에서 외교·안보·통일 분야의 중장기 국가전략과 정책대안 마련에 매진해 왔습니다. 1986년 재단 부설 ‘평화안보연구소’로 출범한 이래, 30년간 외교안보연구소, 통일연구원, 한국국방연구원 등 국책 연구기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명실공히 외교안보 분야 최고 민간 연구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커다란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31회째를 맞이하는 연례 ‘국가전략포럼’이나 매월 열리는 ‘세종정책포럼’은 세종연구소의 대표적 포럼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우리 안보가 심각한 도전을 맞았던 1976년 8.18 도끼만행 사건 직후 외교부에 입부한 이래, 북한의 각종 도발, 한미동맹,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북핵위기, 동북아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 등 우리 안보의 주요 현안들을 오랫동안 다루어 왔습니다. 외교관으로서 지난 40년간 수없이 많은 도전들을 경험하였고, 그 속에서 당면현안이나 위기에 대한 대응은 물론 중장기적인 전략 마련을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왔습니다. 특히 장관에 취임한 이후 이러한 고뇌와 결단은 일상이 되고 있는데, 어려운 고민을 할 때마다 세종연구소와 같은 훌륭한 싱크탱크의 전략보고서들이 저에게 좋은 영감을 주거나 창의적 방안에 대한 소재를 제시해주곤 했습니다.

부내에서도 저는 직원들에게 외교관은 분명한 역사 인식, 좌표인식, 목표의식을 갖추어야 하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통찰력, 전략적 사고와 함께 협상력과 실행능력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취임 직후부터 외교부에 칸막이적 사고의 틀을 깨고 치열한 토론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소위 꽁끌라베라고 불리는 전략토론도 이러한 통합적, 통섭적인 접근을 강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난달 한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최근 우리 외교환경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리고 변화된 외교환경 속에서 우리 외교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에 대해 설명한 바 있습니다.

우리 외교지형의 변화에 따라 고난도 외교사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우리 외교는 한반도 차원이든, 동북아 차원이든, 글로벌 차원이든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일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구체적인 현안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떤 때는 중국의 부상, 일본의 전후질서 탈피외교,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같이 동아시아 질서 변화와 관련된 역내국가들간의 긴장과 갈등이 당면현안 못지않게 더 큰 지정학적, 전략적, 역사적 함의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 외교는 당면현안은 물론 잠재적 도전에 대해 임기응변이 아닌 큰 틀에서 전략과 로드맵을 가지고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정 시점보다는 전체 흐름 속에서 현상을 관찰하고 대응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변화된 외교환경 속에서 우리의 외교 수행방식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양자외교는 기본이고, 3자, 소다자, 그리고 다자외교 등 처한 상황과 난이도에 맞는 창의적인 방식을 유연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지금 우리가 직면한 복잡하고 민감한 고차방정식 사안들을 풀어나갈 수 없습니다. 특히 현 정부들어 다자외교 무대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데, 이제 많은 외교 사안이 어느 한 지역에만 국한되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북핵문제도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국제사회의 문제가 되었듯이, 시리아와 에볼라 사태처럼 중동과 아프리카 문제도 우리에게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어느 지역도 테러, 난민, 전염병, 기후변화와 같은 글로벌 문제로부터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외교안보정책을 다루는 인사들은 고정관념과 과거 타성에 젖은 업무방식에서 벗어나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노력, think out of the box하는 자세, 나무와 숲을 함께 보는 시각, 그리고 단기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측면도 함께 고찰하는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정부에서 정책을 다루는 사람들의 경우 학계·싱크탱크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외부 전문가들의 식견과 영감을 공유하는 노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외교장관 취임 전 수년간 학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이러한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느낀 바 있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 행사에서는 싱크탱크의 역할 뿐만 아니라 최근 외교·안보·통일 주요현안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토론을 가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세종연구소가 출범한 당시와 현재 우리가 처한 위협을 분석하고 대응 방식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80년대 초에는 북한으로부터 재래식 위협이 주를 이루었고 이에 대해 한미동맹 차원에 국한하여 주로 대응이 이루어졌다면,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북한의 재래식 위협이 여전히 심각한 가운데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다변화되었으며,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더 나아가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위협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처럼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전체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커졌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금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입니다.

북핵 도발에 대해 유엔 안보리는 초강력 제재결의 2270호를 채택했는데, 이는 우리의 주도적 노력을 통한 압박외교(coercive diplomacy)의 대표적인 이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보리 결의 2270호는 북한의 핵보유 야욕 對 국제사회의 북한 비핵화 의지의 대결 구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일치되고 단호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7차 당대회에서 병진노선을 항구적 국가전략으로 재확인함으로써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사회에서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전방위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와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잡았습니다. 우리로서는 안보리 결의 2270호 이행과 함께 미, 일, EU, 호주 등 우방국 차원의 독자제재가 상호 보완적인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고삐를 조이고 있습니다. 요 며칠 사이 스위스 정부와 EU의 독자제재 조치가 발표되었는데 우리 정부는 앞으로도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대북 압박을 견인해 나가고자 합니다.

금주 초 어느 외국언론은 사설을 통해 지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국제사회는 안보리 대북 제재결의를 통해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제대로 된 기회를 만들었다고 하면서, 지금은 강하게 북한을 압박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대북 압박외교를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 금년 상반기 우리의 외교동선을 유심히 살펴보신 분들은 우리 외교가 전략적 로드맵을 갖고 추진되고 있음을 쉽게 관찰하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난 2월 유엔과 뮌헨안보회의를 통한 안보리 이사국과 EU, NATO 파트너를 대상으로 한 압박외교에 이어 3월초 제네바에서 유엔군축회의와 인권이사회에서의 기조연설, 그리고 3월말 박근혜 대통령의 핵안보정상회의 참석과 그 계기에 한-미/한·미·일/한-일/한-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개최되었습니다. 그리고, 4월 하순 북경에서 열린 CICA(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 외교장관회의와 이달초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국빈방문을 통해 전례없이 강력한 일련의 대북 메시지가 발신된 바 있습니다.

중국, 러시아, 중앙아가 주축을 이룬 CICA와 이란에서도 강력한 대북 메시지가 발신된 것은 북한에게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라고 미측 고위인사들도 평가한 바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금년 상반기중 북한 우방국 및 동조국을 집중 공략하는 압박외교를 이처럼 전략적 로드맵을 갖고 전개하고 있는데, 앞으로 몇 차례 더 이러한 움직임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다음 주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 특히 아프리카 연합에서의 특별연설도 이러한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금년에 비확산 및 다자 수출통제체제 분야의 주요 회의를 적극 활용하여 북한의 WMD 개발에 대한 강력한 대북 압박외교를 전개해 나갈 예정입니다. 내달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채택 20주년 특별회의가 비엔나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같은 달 우리가 의장을 맡게 되는 핵공급국그룹(NSG) 총회가 서울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또한, 10월 부산에서는 우리가 주최하는 미사일수출통제체제(MTCR) 총회가 열릴 예정이고, 12월에는 지난 3월 종료된 핵안보정상회의 후속 메카니즘인 IAEA 핵안보 각료급회의에서 제가 의장을 맡을 예정인데, 이런 일련의 다자 외교를 총 동원할 생각입니다.

오늘 전문가 여러분께서 다룰 이슈들 가운데는 북핵문제와 같은 현안 및 위기관리 뿐만 아니라 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담론과 어젠다 세팅을 요구하는 이슈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가 위치한 동북아 역학구도의 복잡성과 민감성에 비추어 볼 때 그런 접근이 갈수록 중요해 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복잡하고 민감한 주변환경은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이 될 수도 있고 동시에 기회도 될 수 있습니다. 다양하고 상충되는 이해가 혼재되어 전개되는 동북아의 독특한 외교환경 속에서 어떤 현상을 黑白의 프리즘을 통해 바라봐서는 그 속에 담겨진 다양하고 복잡한 실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차 방정식의 어려움을 인식하면서 우리의 지혜와 역량을 토대로 국제사회와 공조하면서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시켜 나가는 끈질긴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점에서, 세종연구소가 앞으로 동북아 외교질서의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하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방향성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한반도와 동북아 차원을 넘어 글로벌 차원에서도 우리 외교의 앞길에는 도전과 기회의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3세션에서 '2030년 중장기 전망'이 주제로 다루어질 예정이라고 알고 있는데, 잘 아시는 바와 같이 2030년은 작년에 유엔에서 채택된 SDG의 목표연도인 만큼 글로벌 공공선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는 시점이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로서는 SDG 이행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 의장국으로서 SDG 이행 원년인 올해 더욱 기여할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다음 주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은 우리가 글로벌 외교의 대표 브랜드로 적극 추진중인 개발협력과 인도주의 외교 측면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해 나감에 따라 우리의 외교 역량에 대한 신뢰는 커지고 이는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 과정에서도 소중한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윈스턴 처칠은 “어리석은 자는 모든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현명한 자는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찾아낸다”고 했습니다. 우리 외교의 앞길에 앞으로도 많은 장애물과 도전이 있겠지만 우리가 가진 지혜와 역량을 한데 모아서 이를 극복하고 기회로 만들어,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세종연구소와 같은 싱크탱크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외교부로서는 저를 포함하여 해당부서에서 직접 그리고 외교안보연구소를 통해 싱크탱크와 학계 등 전문가 그룹과의 긴밀한 교류를 계속 강화해 나가고자 합니다.

박준우 이사장님과 진창수 소장님께서 탁월한 역량과 열정으로 이립(而立)의 나이를 맞은 세종연구소를 과거 어느 때보다 훌륭한 연구기관으로 키워주고 계신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 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세종연구소의 창립 30주년을 거듭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