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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언론

[기고] 중국 건국 60주년과 한중 관계

부서명
작성자
석동연 주홍콩총영사
작성일
2009-10-08
조회수
1383

[기고] 중국 건국 60주년과 한중 관계

석동연 주홍콩총영사, 2009.10.7(수), 한국일보 게재 


1949년 10월 1일 오후 3시 마오쩌둥(毛澤東)은 장정(長征)기간 풍찬노숙을 함께한 노전사들과 함께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올라 신중국 성립을 선포하였다. 중국 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순간이었다.

며칠 전 그 톈안먼 광장에서 건국 60주년 행사가 장엄하게 거행되었다. 인민해방군의 열병과 분열에 이어 대륙간탄도탄을 비롯한 최첨단무기를 선보이며 중국의 힘을 대내외에 과시한 퍼레이드에 중국인들은 환호하며 스스로 이룬 성취에 감격하였다.

경제ㆍ외교 대국으로 도약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걸어온 169년의 험난한 역정을 생각할 때 중국인들의 벅찬 감회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동아시아의 환자 취급을 받은 100여 년은 치욕과 통한의 역사였다. 신중국 건국 이후에도 20년 동안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숱한 고난과 좌절을 겪었다. 1978년에야 비로소 개혁개방의 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중국은 시장경제 체제로의 성공적인 변화를 이루고 경이로운 발전을 거듭했다.

지난 30년간 경제성장율은 평균 9.8%을 기록하였고 1978년 200억 달러에 머물던 수출액은 연간 1조 4,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농촌 빈곤인구는 2.5억 명에서 1,400만 명으로 감소되었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과 선저우(神舟) 7호 유인우주선 발사는 중국 경제와 과학기술의 발전을 전세계에 과시했다.

중국은 2조 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의 외환보유국, 세계 3위의 경제규모와 무역액 등,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환골탈태하였다. 이러한 경제력은 국제적 지위의 상승으로 이어져 외교 대국으로 우뚝 섰다. 경제ㆍ안보 등 범세계적 문제 논의에 중국의 협조는 이제 불가결하다. G-2, 팍스시니카(Pax Sinica) 용어가 자연스러운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얼마 전 중국에서 가장 작고 빈곤한 닝샤(寧夏) 회(回)족 자치구를 방문했다. 황토고원의 척박한 땅에 대규모 에너지화학공업단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을 보며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를 떠올렸다.

올해 초 홍콩 아시아협회 연설에서 허야페이(何亞非)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1949년부터 30년간 외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모두 20만 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1년에 4,200만 명에 이른다며 중국의 변화를 강조했다. 중국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중국은 더 이상 과거의 낙후하고 빈곤한 나라가 아니다.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

1992년 한ㆍ중 수교 이후 양국관계는 중국의 지속적인 개혁개방 정책에 힘입어 놀라운 발전을 거듭했다. 한ㆍ중관계 증진이 중국 개혁개방의 좋은 성공사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해 한ㆍ중 무역규모는 1,683억 달러로 일본과 미국과의 무역량을 합친 것과 거의 맞먹는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투자대상국이 되었고 양국간 인적 교류는 연간 500만 명을 넘어섰다.

전략적 동반자관계 발전시켜야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괄목할 만한 관계증진이 이루어져왔다. 지난해 5월 이명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두 나라 관계가 격상되었고 북핵 문제 해결 등 외교안보에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다.

중국의 급속한 발전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도전이다. 중국의 역사적 변화의 의미를 면밀히 살펴보고 중국과의 관계가 진정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한 차원 높게 발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과제를 찾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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