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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국내언론

[인터뷰] “문건 유출 사건땐 배신감 마저”

부서명
작성자
김종훈 한미FTA협상수석대표
작성일
2007-05-02
조회수
1183

‘비합산’ 카드 백분활용…약값·ISD 조항 얻어내

“‘사무라이’~ 자네 아니었다면 못했을 거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별관 8층 김종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 집무실에 들른 외교통상부 한 동료 외교관의 인사에는 격려와 흥분이 묻어났다.

 

“제 눈매가 좀 무섭고 승부사 기질이 있어서 다들 '사무라이'라고 부릅니다. 니들은 어떻게 생각하노?”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김 수석대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회의석상에 앉은 여직원은 “협상장에서는 한 없이 깐깐한 표정이지만 알고 보면 소탈하고 담백하신 분”이라고 맞받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된 지 3일째인 5일 오후. 국회 협상결과 보고에서 돌아오자 마자 직원 회의를 소집한 김종훈 수석대표의 표정은 한결 여유를 찾은 모습이었다. 빡빡한 국회 보고에다 이어지는 회의, 심야 방송 토론 출연까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지만 인터뷰 내내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협상 결과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속시원하게 말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말을 못하겠다”고 운을 땐 그는 “비준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김종훈 수석대표가 소탈하게 웃으며 한미FTA 협상 타결까지의 뒷이야기를 풀어놨다.)

 

 

-협상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너무 잘된 협상이라고 떠벌리면 저쪽(미국측)에서 ‘한국은 환호작약(歡呼雀躍)을 하는데 너희는 왜 말이 없냐’ 그렇게 된다. 이 협상이 웬디(웬디 커틀러 미국 측 협상단 수석대표)는 ‘A+’라고 하고 나는 ‘수’를 주고 싶다고 했는데, 국회에서 너무 오만방자한 것 아니냐고 말 들었다.

그런데 양측 다 높은 점수를 달라고 했던 것은 서로 주고받은 것이 균형이 잡혀있다고 생각하고 높은 점수를 달라고 했던 것이다. 어느 한쪽이 많이 받고 다른 쪽은 가진게 없다면 비준이 안 된다. 그래서는 통상이 성립이 안 된다.

웬디가 기자회견 끝나고 나서 ‘너무 많이 받아가는 것 아니냐, 우린 얻은 게 없다’고 했다. ‘얻은 게 없긴 뭐가 없냐’라고 되받았는데...(웃음). 보는 각도에 따라서 판정승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균형이 맞았다고 하는 게 제일 좋다. ‘만족 할 만하다’는 표현이 제일 적절하고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에게 좋다.”

-어떤 부분에서 균형이 맞는 것인가?

“이번 협상에서 미국측 요구사항은 제도개선 쪽이 많았다. 투명성과 공정성, 기술표준, 이해관계자 참여 절차 등 주로 ‘돈이 들지 않는’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이들 사항은 우리의 경제 시스템과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 하는 데도 도움이 되는 만큼 이런 것들을 주고 우리는 ‘돈 되는 것’을 받아냈다.

가령 각종 법과 제도를 만들 때 이해관계자의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법령을 고칠 때 입법예고 기간이 20일 정도인데 이건 너무 짧다. 더구나 외국인은 번역을 해서 봐야 하고 시간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60일로 늘리자고 요구하는 40일로 절충한 것이다. 이해관계자들이 각종 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기할 때는 충분히 참여하도록 해줘야 한다. 미국은 이런 것들을 강하게 희망했다.

이런 것들을 하는데는 돈 하나도 안든다. 그것을 주니까 미국은 좋아하고 우리는 돈 되는 것을 받아내고 한 것이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미국식으로 우리 제도를 바꾸려 한다, 굴욕적 협상을 했다’ 이렇게 보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모로 보나 절차적 민주주의를 하려면 참여의 폭을 넓혀줘야 하고 절차를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협상 결과를 놓고 논란이 많은데?

“협상내용도 중요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국민들에게 ‘우리는 확실히 개방과 경쟁으로 간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개방과 경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한미FTA는 이를 강하게 제기한 계기라고 본다. 한미 자유무역 하나로 ‘흥부 박 터지듯’ 보물이 쏟아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개방과 경쟁으로 나가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헛물 키는 것이다.”

-협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막판 12시간 정도가 가장 어려웠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미국 몬태나에서 5차 협상을 할 때 무역구제 비(非)합산 조치(반덤핑 조치 발동을 위한 산업피해 판정 때 한국산은 분리해서 평가)에 대해 미국이 저항을 하면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통보해 왔을 때가 어려웠다.

비합산 조치는 사실 얻어내면 좋은데 저쪽에서 이것은 못하겠다고 할 때 우리는 내놔라, 내놔라 해서 값을 엄청 키워 놨다. 미국이 여기에 엄청 부담을 가졌다. 값을 키워놓고 난 다음 미국이 ‘도저히 안 되겠다’고 나오면서 우리도 ‘내줄 수 없는 것’을 덜어냈다.

비합산 조치는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인데 이를 카드로 활용해 다른 것을 얻어냈다. 신약 최저가 보장과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절차(ISD)의 예외조항 등을 얻어냈다. 저쪽에서는 신약 최저가 보장을 2차 협상 때부터 굉장히 강하게 요구했다. 그것 때문에 협상이 파행되기도 했다. ISD는 당연히 가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부동산하고 조세는 빠지는 것이 좋겠다 해서 이를 빼고 약가 최저가 보장도 뺀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협상을 잘했다고 본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한미FTA 1차 협상 때부터 작성해 온 방대한 분량의 협정문을 보여주며
5월에 완벽하게 정리해서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무역구제 부분에 아쉬움이 있는 것인가?

“비합산조치를 못 얻어냈다고 해서 무역구제에서 도움이 되지 않느냐, 그렇지 않다. 최근 논문을 보면 양국간 FTA가 되면 두드러지는 현상으로 반덤핑 제소가 절반 이상 줄어든다. 그만큼 시장 개방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관세가 계속 유지되고 비관세 보호 장치가 계속 되면 그것이 반덤핑 조치의 소지가 된다. 그런데 FTA되면 개방구조가 넓어지기 때문에 상호 반덤핑을 쓸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드는 것이다.

지금 최종 협정에서 합의한 것을 보면 미국이든 우리든 반덤핑 조사를 하면 서로 협의하도록 돼 있고 예비판정과 최종 판정사이에 서로 합의해서 물량조절하고 기각할 수 있도록 했다. 위원회도 만들고, 얻을 것은 다 얻었다고 본다. 다만 비합산 조치가 있었으면 좋지만 더 중요한 것(약가 최저가 보장)을 막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협상을 그만하고 싶을 때는 없었나?

“비합산 조치를 놓고 한창 딜을 할 때 문건 유출 사건이 터졌다. 한참 값을 올리고 할 때 그것(협상전략문건)이 공개되면서 상대가 우리 작전을 알게 됐다. 화가 조금 날 정도가 아니라 배신감을 느꼈다. 진솔한 마음으로 자료를 제공했는데….

초반에 밀실협약이니 뭐니 했는데, 협상을 어디 길바닥에서 할수 있나요, 문닫아 걸고 하는 것은 당연한데…(웃음) 정보공개요구에 따라 한미FTA체결 기획단에서 표를 가져갔는데, 비밀 문건 분류를 우리 국회에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미국은 정보유출하면 평생책임지게 돼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난처한 입장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받을 것은 받고 해서 크게 영향은 없다.

1차 협상 때 워싱턴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이 방해를 많이 했는데, 10분 이상 협상장에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다.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50m를 따라 오면서 북치고 장고치고…그때 심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장이 달라도 나라를 대표해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에 왔는데….

그때 미국 경찰이 집시법 위반사항이라며 처벌할까하고 물어보았다. 그래서 ‘우리 같은 국민이다, 주의주장이 다를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넘어갔다.”

-통항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 이었나?

“협상을 책임지고 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신뢰가 있어야 한다. 서로에 대한 반감이 있으면 방법이 없다. 서로간 입장을 조율하려면 상대편 말을 잘 들어야 한다. 왜 상대방이 이런 말을 하는가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어려운 협상일수록 신뢰가 없으면 처음부터 마주 앉을 수 없다.

그리고 이해를 절충하는데 있어서는 먼저 카드를 내놓으면 진다. 작은 칼은 몇 번 찔러보지만 긴 칼은 남겨둬야 한다. 샅바를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 씨름처럼 막판 샅바를 놓으면 진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근성이 필요하다.”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와 그런 신뢰를 갖는 장치가 있나?

“협상 파트너는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 해 보면 안다. 웬디는 착하고 같이 일해 볼만 하다. 200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때도 같이 일해봤다. 한국에 왔을 때 국민적 감정을 감안에 많은 호혜적 제스처와 친화적 이미지를 심어줬다.”

 

-미국의 민감한 부분은?

“미국은 이미 많이 개방돼 있다는 자체가 협상력을 굉장히 높이는 것이다. 자기 시장이 굉장히 개방돼 있다는 것은 FTA 협상에서 아주 오펜스할(공격적일)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기본적으로 통상 협상한다고 하면 공세부터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미국의 단점이다. 오펜스만 해 봤지 디펜스(방어)는 해본 적이 없으니까 우리가 거세게 공격하면 견제를 못하더라. 이번에 한국과 해보니까 우리가 공세적으로 나가니까 디펜스를 못하더라.

미국의 쌀 개방 요구에 맞서 우리측이 우리 국적선도 미국 연안의 승객과 화물 수송을 허용하라고 미국의 ‘존스액트’를 건드리니까 디펜스를 못했다. 미국 통상협상에서 논리적 방어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존스액트는 미 연안의 승객·화물 수송을 미국서 만들어진 미 국적선에만 허용한다는 것으로 미측이 자국 안보를 이유로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쌀 시장 개방요구도 철회했다.)

-협상연장에 대해 아직도 궁금해 하는 국민들이 많은데?

 

“미국 협상대표단이 3월 25일 저녁 도착해서 26일 만나자 마자 첫 말이 ‘30일 금요일, 우리시간으로는 토요일(31일) 새벽 1시가 데드라인(마감시간)이다’ 하고 애기하더라.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다’고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나중에 보자, 진짜인지’하고 넘어갔다. 31일 자정이 다가오는데 될 것 같지가 않더라, 양쪽 입장이 너무 큰데, 깨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4일 집을 나서면서 마음속으로 ‘하겠다고 덤벼들면 깨질 것 같고, 깨져도 좋다하고 덤벼들면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유식한 말로 하면 ‘생즉사(生卽死) 사즉생(死卽生)’인데, 딱 그 순간에 그 생각이 들더라. 깨진다고 덤벼들어야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끝까지 우리 카드를 내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난 다음 협상시한이 임박해서 그쪽에서 전화가 왔다. ‘48시간 더 협상하자.’ 그 순간 이건 되는 거구나 하고 직감이 왔다. 데드라인이 금요일이라고 했다가 그들이 시간이 더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밝히고 말았고 그때까지 우리는 중요한 카드를 쥐고 있었고 저쪽에서 더 해보자 나오니, (미국측이) 깰 생각은 없구나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결국 협상은 2일까지 이어졌는데?

“48시간 연장 이후에도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48시간 연장하면 그때가 (미국시간) 일요일 낮 12시인데 일요일에 무슨 시한이 있나, 미국측에서는 의회 통보하고 문서 접수하는 시간을 감안해 낮 12시로 잡았다고 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속으로 ‘일요일 밤 자정이면 몰라도 낮 12시가 무슨 시한이냐’고 생각했다. 그쪽(미국측)에서 들킨 것이다.

(김현종)본부장께 보고했고 우리는 버틸 때까지 버터보겠지만, 저쪽과 이야기 한 것을 우선 대외경제장관회의에 보고하기로 했다. 일요일 밤 장관회의가 9시30분부터 1시간 반 열였는데 ‘2일 새벽 1시에 타결된다’는 전제 아래 준비할 것들을 미리 정해놓았었다. 그래서 제가 일어서서 ‘준비하시는 것은 좋은데 이렇게 안될 수도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시각 2일 새벽1시라는 것은 미국에서는 일요일 낮 12시고 결국은 어떻게 하다보면 일요일 밤까지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시간으로 2일 오전 11시까지도 갈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니까 2일 낮 11시까지 소식이 없다고 깨졌다고 낙심하지 말고 딜이 계속되고 있구나 하면서 일정이 바뀔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안 그랬으면 아마 큰 혼란이 있었을 것이다.

결국 12시 40분까지 갔다. 우리는 저쪽이 시간을 연장할 것이라는 것은 내심 알고 대비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샅바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난 그렇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밖에서는 ‘고무줄 시한, 계속 밀렸다’ 하는 데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막판 12시간이 가장 어려웠다고 했는데, 협상 타결의 결정적 계기는?

당초 시한이라고 한 때까지는 쟁점이 너무 많이 남아있었다. 물리적으로 깨지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제일 민감했던 농업 쪽은 거의 한 발짝도 못나가고 있었다.

협상 물꼬는 자동차에서 미국측이 승용차 전부 물러주겠다(3000cc이하 관세 즉시 철폐)고 한 때이다. 그 이후 월요일 새벽부터 우리도 움직여봐야겠다고 생각했고 방송 통신 등 나머지 쟁점을 다루면서 농업도 지킬 것은 지켜가며 협상을 하나하나 진행했다. 그게 돌파구였다.

미국측의 자동차 최초안은 언디파인드(미분류)였다. 계속 미정이었다가 고위급 회담 때 승용차 5년, 트럭 10년(관세 철폐안)을 내놨다. 이 때문에 29일 밤 협상이 결렬되기도 했다. 이어 30일 새벽 저쪽에서 자동차 분야에서 조금 진전된 카드를 내놨다. 양국 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한 뒤였다. 우리는 그때까지도 버텼다.

미국측이 막판 고위급회담에서 조금씩 내주기 시작했다. 거의 월요일 아침 동이 트면서 마지노선 카드를 보여줬다. 그러기 전에 쭉 이야기하면서 상대편 수를 읽어나가면서 서로 의견을 조율하면서 막판에 좁혔다.”

 

(2일 오후 한미FTA 협상 타결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김종훈 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 수석대표가 악수를 하고 있다.)

 

-개성공단 문제에 미국이 전향적으로 생각하게 된 배경은?

“최근 6자회담, 북미관계 진전 등 상황변화와 이에 대한 미국내 전반적 평가를 통해서 이렇게 된 것 같다. 여기서 잘 풀어서 북미 관계 개선에 추진력을 주자는 미측의 자세를 엿볼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작용했던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우리 안을 그 전에 줬고 미측은 이를 검토하고 돌아왔다. 문안정리는 큰 문제가 없었다.”

-또다시 일부에서 이면합의 주장을 하고 있다.

“이면합의라니요? 그런거 절대 없다. 이번 협상 초기 단계부터 이면합의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각 분과장과 협상단에 강조하고 약속했었다. 협상에서 논의되고 합의된 사항은 모두 발표한다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다. 협정문과 부속서가 투명하게 공개되면 이면합의가 없었다는 사실이 더 명백해 질 것이다.

일부에서 쇠고기와 LMO(유전자 변형 생물체)위생검역, 양국간 육류검사 동등성 문제, 조류인플루엔자(AI)의 지역화 문제 등은 FTA 협상과는 별개로 추후 논의와 협의를 계속하는 부분인데 이를 양보나 이면합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해이자 논리적 비약이다. 이번에 우리나라의 관련 제도와 원칙을 이야기했고 앞으로 담당 분야별로 이들 문제를 계속 논의하고 협의해 나가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빨리빨리 움직이는 것은 좋은 데 때로 너무 급한 것 같아 아쉽다. 절차를 통해 차근차근 보고 따져도 되는데 너무 급한 것 같다. 협정문이 나오면 한미 공동의 자산이다. 5월 정도에 함께 발표하는데 그때 까지는 좀 기다려 달라.”

-협상을 끝낸 소감은?

“작년 2월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 수석대표로 임명받았을 때 심정은 힘든 일이지만 한번 해볼 만하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시작을 하면 끝을 봐야 한다는 각오였다. 공식적인 직함이 없는 상태에서 첫 공청회(2월2일)에 갔다가 엄청난 공격을 받고 착잡하고 충격적인 심정으로 전철타고 돌아오다가 전철 바꿔 타는 것을 놓쳐 땅 속에서 2시간이나 헤맨 기억이 생생하다.

국부를 키우는 것, 개념적으로 부가가치를 키우는 것인데,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결국 기업과 소비자 생산자 국가전체가 이제는 개방과 경쟁으로 간다는 국민적인 풍토가 있어야 부가가치를 계속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끝>

 

김호섭·선경철 (dreamhk@korea.kr)

출처 : 국정브리핑(korea.kr) 200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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