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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국내언론

[인터뷰]"미국 공세 강해 3차례 위기 여차하면 깰수 있다 배짱싸움"

부서명
작성자
김종훈 한미FTA수석대표
작성일
2007-04-13
조회수
1024

 

"미국 공세 강해 3차례 위기

여차하면 깰수 있다 배짱싸움"

 

 

 

한.미FTA 협상 주역 김종훈 수석대표 인터뷰

 

협상이 타결됐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실감한다는 김종훈 한·미 FTA 수석대표를 11일 오후 정부 중앙청사 외교통상부 집무실에서 만났다. 협상 타결 이후에도 국회 보고, 협정문안 점검 등으로 바쁘게 보내는 탓인지 김 대표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 묻어났다.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자마자 날카로운 눈빛을 드러내며 270여명의 협상단을 이끌었던 ‘야전 사령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김 대표는 무역구제에서 한국이 얻은게 없다는 평가에 서운한 듯 “무역구제 관련 합의 결과는 의무조항(영어로는 shall로 표현)으로 명시되기 때문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3번의 결렬 위기가 있었다는 점, 협상 초기 19개 분과원을 모두 모아놓고 인생에서 단 한번뿐인 일이니 전력투구를 하자고 다짐했던 일 등을 소개했다.

 

 

-지난해 4월26일 국가경영전략연구원(NSI) 정책포럼에서 한·미 FTA 협상이 앞으로 3차례 위기가 있을 거라는 말을 했었다. 실제로 그랬나.

 

“마침 오늘도 NSI 포럼에 가서 협상 결과를 설명했다. 1년 전에 3차례 위기가 있을 거라고 얘기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약가 적정화 방안을 시행한다고 발표하면서 미국이 의약품 분과 협상을 결렬시켰던 2차협상이 첫번째였다. 두번째는 시애틀에서 3차협상을 열기 전 양국이 공산품 양허표(품목별로 관세 철폐 기간 등을 적은 표)를 교환했을 때였다. 미국이 엄청나게 (관세 즉시 철폐 품목을) 낮게 내놓아서 정말 황당했었다. 세번째는 우리가 무역구제 압력을 한창 높이던 지난해 12월 말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의회에 법 개정 사항을 12월말까지 통보해야 한다. 이때 무역구제 관련 우리 요구사항 중 법 개정사항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통보해 협상이 어려운 국면으로 갔었다.”

 

 

-마지막 협상에서 미국이 연장 요청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나.

 

“그렇다. 토요일(3월31일) 새벽 1시 이전에 양국 협상단은 각자 방으로 철수한 상태였다. 입장 차이가 너무 크다고 느끼고 헤어져서 새벽 1시를 넘겼다. 서로 속은 탔지만 배짱 싸움을 했다. 그러다 미국이 48시간을 더해보자고 얘기했다. 그 때도 48시간 연장은 못 믿겠다는 말을 했다. 일요일에 근무시간이 따로 있냐면서 돌려서 물어봤다. 결국 일요일(4월1일) 자정도 넘기지 않았나.”

 

 

-14개월 동안 협상을 이끌면서 기억나는 일은.

 

“14개월이 매일 희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출근하면 희망이 생기지만 저녁에는 이게 되는 일인지 하는 깊은 근심에 빠졌다. 그래도 협상장에서는 여차하면 깰 수도 있다는 걸 몸짓으로나 표현으로나 전달했다. 다만 속마음은 내 직분은 딜 메이커다라는 거였다. 메이커하겠다고 드러내면 약점 잡히니까 상대에게는 깰 수 있다고 말했다. 타결 직후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둘이 따로 만났다. 둘이 악수를 하고 서로 못 본 척했지만 본부장 눈에 눈물이 그렁거리더라. 나도 눈물이 났다.”

 

 

-미국 협상단 사이에서 한국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타결 이전까지 미국은 일방적으로 통상 보복조치를 휘둘렀다. 당시 협상을 했던 사람들은 USTR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미국도 이제는 논리로 상대국을 설득하고 압박할 수밖에 없다. 또 한·미 FTA의 의제 범위가 워낙 넓어 미국이 수세인 점도 많았다. 미국은 공격만 해본 탓에 수비에 아주 약했다. 이런 분위기를 참지 못한 미국 분과장 중 일부는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 분과원들도 너나 없이 전력투구했다. 끝나고 나니 김원경 외교통상부 협상총괄팀장과 재정경제부 김영모 과장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고 하더라. 협상 초기에 분과원들을 모아놓고 인생에서 다시 안 오는 경험이니 후회 없이 하자고 다짐했었다.”

 

 

-쇠고기 검역 문제는 FTA 의제가 아닌데도 계속 걸렸다. 따로 해법을 준비했었나.

 

“양국 정상간의 통화가 계기가 됐다. 그 뒤 미국이 실무선에서 영수증(서면 확답) 같은 걸 계속 요구했는데 더이상 시비하지 말라고 일축했다. 서면이나 또다른 구두 약속은 하지 않았다.”

 

 

-무역구제는 이 정도 수준으로 합의해도 효과가 있나.

 

“지난 10년동안 무역구제협력위원회를 만들자고 요구해도 거부한 것을 미국이 받아들였다. 반덤핑 조사 개시전 사전협의, 가격이나 물량조정으로 합의할 수 있는 절차 등도 관철됐다. 미국이 FTA를 하면서 무역구제를 협정문에 넣어본 적이 없는데 이걸 모두 ‘shall’이라는 의무조항으로 넣었다. 미국이 기존 법령을 고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간 것이다.”

 

 

-비합산 조치(특정 산업의 피해를 조사할 때 여러 수출국 제품을 합산해 반덤핑 관세를 매기는 방식 금지)는 관철시키지 못했는데.

 

“워낙 어렵다고 해서 트레이드 오프(trade-off)했다. 서로의 요구 사항을 저울추에 올려놓고 같은 무게로 들어냈다. 대신 미국은 신약 최저가 보장 요구를 포기했고, 투자자-국가간 제소(ISD)의 간접수용 대상에서 부동산·조세정책을 제외하자는 우리 요구를 받아들였다. 비합산 조치는 원래 우리 전략이었다. 일부러 값을 굉장히 키웠다. 되면 좋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국이 굉장히 곤혹스럽게 생각하기에 더 세게 나간 거다.”

 

 

-ISD는 주권 침해 논쟁까지 붙고 있는데.

 

“조약을 체결하면 조약이 추구하는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자기 주권을 그만큼 양보하는 것이다. 주권 포기라고 보는 것은 국수적 시각이다. 우리가 그동안 경제 개발을 해 온 모습이나 앞으로 살아갈 방향에 투영해보면 그런 국수적 발상 갖고는 도저히 해답이 안 나온다.”

 

 

-자동차 협상 타결내용에서 스냅백(협정 사항을 위반할 경우 한국산 자동차에 주는 관세 특혜를 모두 원점으로 돌리는 보복조치)이 논란인데.

 

“스냅백은 받기가 좀 불편했고, 기분도 나빴다. 통상 보복은 비례성이 원칙인데 스냅백은 그걸 넘는 개념이다. 미국이 제의했을 때 명분과 실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더 많이 팔아야겠다는 시장 접근의 문제였고, 미국은 정치적 고려를 많이 했다. 실리를 얻는다면 명분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의회의 재협상 요구가 높은데.

 

“노동·환경 등의 재협상 요구가 있을 것을 이미 우려했다. 행정부와 의회가 합의를 하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래서 미국에 타결 이후 다시 들고 나오면 아주 어려워진다는 반대 의사를 강하게 표명했다.”

 

 

-협상결과에 다시 점수를 매겨도 ‘수’를 줄 것인가.

 

“협상이 끝난 날 저녁에 웬디 커틀러 미국 대표와 포도주를 한잔 했는데 “한국은 받은 게 많은데 난 돌아가서 말할 게 없다”고 하더라. (웃음) 받을 거 다 받고 줄 거는 하나도 안줬으니 ‘수’를 달라고 한 게 아니다. 양국 간에 수용 가능한 내용이 됐다. 어느 정도 균형이 맞춰졌다는 의미로 한 말이다. 이런 차원에서 다시 ‘수’를 줄 수 있다.”

 

김찬희 기자

 

 

출처 : 국민일보 2007/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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