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국민정서로는 국익 추구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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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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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은 무수한 습작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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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의 말이다. 어떤 예술 걸작도, 발명품도 하루 아침에 천재의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무수한 시도와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외교강국이 되는 것도 경제력과 많은 인재의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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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마르크가 외교의 귀재로 불리는 것도 당시 프러시아의 군사력.경제력의 뒷받침은 물론 \'빌헬름 스트라세\'의 많은 인재 덕분이었다. 평범하지만 끊임없이 경제력을 키우고 인재를 기르는 것이 외교 강국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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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만이 지닌, 한가지 극복해야 할 것이 있다. 국민정서의 극복이다. 국민정서는 최근 한국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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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의식, 민족주의 내지 국수주의, 쇄국주의, 반미.반일 감정, 평등의식 등이 뒤섞여 국민정서를 이루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요소 중의 하나가 이슈로 떠오르면 한국의 강력한 국민정서가 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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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서는 국민의식과 다르다. 국민의 뜻과도 다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국민정서가 국민의식 또는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것으로 쓰이는 경향이 최근 늘고 있다. 그 경우 진실한 국익을 추구하기는 어렵다.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우리 국민과 후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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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과거는 피해의 역사인 측면이 크다. 그래서 한국의 국민정서는 무엇보다 피해의식에 입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피해의식.국수주의.쇄국주의 등은 19세기적 정서다.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으면 각종 음모론에 시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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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은 대부분 근거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거나 통제하지 못할 경우 여기에 쉽게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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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의 우루과이 라운드(UR)는 우리의 쌀 시장을 개방시키려는 선진국의 음모이고, 97년의 금융위기는 우리의 경제를 탐낸 단기자본가들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음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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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불과 한 세대 만에 다른 나라가 한 세기에 걸쳐 겪었던 변화를 경험했다.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의 변천, 이에 따른 인구 80%의 이동(농업에서 제조업과 서비스로), 큰 사회적 진통을 겪으며 일궈낸 민주국가의 실현 등은 세계에서 유례가 별로 없다. 국민정서는 이에 수반된 의식의 괴리에서 오는 우리의 고통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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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정서는 과거 국난에 처했을 때 결집력의 원천이기도 했을 것이다. 피해의식과 민족주의에 힘입어 어려운 시기를 버텼을 수도 있다. 올림픽과 같은 국가적 행사를 치를 때 외국인들은 상상도 못하는 국력의 결집이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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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보다 더 세련되고 복잡한 선진국으로 질적 전환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로 외교강국이 될 기반을 갖췄다. 주변 환경도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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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정학적 위치는 제국주의 시대에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틈바구니에서 희생을 강요 당하는 불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약점이 세계화-상호의존의 시대인 21세기에는 능동적 교량 역할을 하게 해주는 강점으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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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좋은 기회를 이용해 외교강국으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 그 첫 걸음은 국민정서를 극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애국심은 사기꾼의 마지막 도피처다." 새뮤얼 존슨의 말이다. 냉철한 판단에 기초해야 하는 국익이 국민정서에 의해 좌우되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된다. 최영진 주 오스트리아대사